
환풍기를 더 오래 돌려라, 커버를 뜯어 먼지를 털어라, 아예 힘 센 걸로 바꿔라. 욕실 천장 모서리에 곰팡이가 보이면 흔히 듣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다 해도 물기가 그대로인 집이 있어요.
청소보다 먼저 가릴 것은 환풍기의 힘이 아니라 그 공기가 어디로 나가느냐입니다. 같은 환풍기라도 나간 공기가 바로 바깥으로 빠지는 집과, 아래윗집 공기가 모이는 통로를 지나는 집은 결과가 다릅니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44조는 주택의 부엌과 욕실, 화장실에 바깥 공기에 면하는 창을 설치하거나 국토교통부령이 정하는 배기설비를 하도록 정하고 있어요. 창이 없는 욕실이라면 이 배기설비가 제 기능을 해야만 습기가 빠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청소에 손대기 전에 확인할 사실이 셋입니다. 지금 배기가 되고 있는지, 배기덕트를 옆집과 함께 쓰는지, 그리고 그 덕트를 누가 관리하기로 되어 있는지예요. 첫째는 휴지 한 장으로 지금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휴지 한 장이 환풍기 그릴에 붙는지 보는 법
환풍기를 켜고 화장지를 한 장 뜯어 그릴 아래에 가볍게 대 보세요. 공기가 빨려 들어가고 있으면 손을 떼도 휴지가 그릴에 붙어 있습니다. 손을 떼자마자 바닥으로 떨어지면 팬은 돌고 있어도 공기는 나가지 않는 상태예요.
소리가 나니까 잘 돌아간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모터 소리와 실제로 빨아들이는 힘은 따로 놉니다. 날개에 먼지가 두껍게 앉거나 통로 쪽이 막히면 소리는 그대로인 채 힘만 떨어져요.

휴지가 붙는데도 욕실이 마르지 않는다면 배기가 아니라 다른 곳을 봐야 합니다. 붙지 않았다면 먼저 열어 볼 곳은 커버 안쪽입니다. 다만 커버에 손을 대기 전에 반드시 끝내야 하는 일이 하나 있어요.
전원을 내리고 커버와 팬 날개를 닦는 순서
1단계, 분전반에서 차단기를 내립니다. 벽 스위치를 끄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커버를 열면 배선과 모터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현관이나 주방에 있는 분전반에서 욕실 회로의 차단기를 내려 두세요.
2단계, 커버를 분리합니다. 대부분 양옆에 걸린 금속 클립을 안쪽으로 눌러 좁히면 빠집니다. 커버를 아래로 조금 당겨 클립이 어디에 걸려 있는지 확인한 뒤에 힘을 주면 덜 부러집니다.
3단계, 커버는 떼어내 물로 씻습니다. 그릴 사이에 낀 먼지는 마른 상태에서 먼저 털어낸 다음 헹구는 편이 덜 번져요. 씻은 커버는 완전히 마른 뒤에 다시 끼웁니다.
4단계, 팬 날개의 먼지는 마른 채로 걷어냅니다. 날개 뒤쪽은 모터와 배선이 가까우니 물이나 젖은 천을 대지 않습니다. 솔이나 마른 천으로 날개 앞뒤를 훑어내고, 떨어진 먼지는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세요.

5단계, 다 마른 것을 확인하고 조립한 뒤 차단기를 올립니다. 커버가 덜 마른 채로 끼우면 그 물기에 다시 먼지가 붙습니다. 조립을 마치고 환풍기를 켜서 소리에 이상이 없는지 들어 보세요.
여기까지가 세대에서 손댈 수 있는 범위입니다. 환풍기 본체를 통째로 바꾸는 일은 전선을 끊고 다시 잇는 작업이 들어가서 청소와 다른 일이에요. 이쪽은 전기공사업체나 관리사무소를 통해 맡기는 것이 맞습니다.
덕트 입구 안쪽으로 청소기 호스나 막대를 밀어 넣는 것도 하지 않습니다. 커버와 팬 날개를 다 닦고 다시 휴지를 대 봤는데도 붙지 않는다면, 막힌 곳은 세대 안이 아닙니다.
배기덕트를 옆집과 함께 쓰는 구조일까?
욕실에서 나간 공기가 지나는 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세대에서 나온 공기가 바로 바깥으로 빠지는 전용덕트고, 다른 하나는 여러 층의 욕실 배기가 하나의 수직덕트로 모여 옥상으로 나가는 공용덕트예요.
이 둘은 막혔을 때 벌어지는 일이 다릅니다. 전용덕트는 통로가 우리 집에서 시작해 우리 집에서 끝나기 때문에, 팬 날개와 커버를 닦으면 빨아들이는 힘이 대체로 돌아옵니다. 공용 수직덕트는 아래윗집에서 나온 공기가 같은 통로를 지나므로, 세대 안을 아무리 닦아도 통로 쪽 사정이 그대로면 결과가 바뀌지 않아요.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44조는 창을 두거나 배기설비를 두라고 정할 뿐, 어느 방식으로 만들라고까지 정해 두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이 어느 쪽인지는 준공 도면을 가진 관리사무소에 물어야 알 수 있어요.
공용 수직덕트에서 공기가 거꾸로 내려오는 것을 막는 장치를 자동역류방지댐퍼라고 합니다. 신축 공동주택 기준에는 이 댐퍼가 들어 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그 기준이 생기기 전에 지어진 단지에는 없을 수 있어요.

댐퍼가 없는 공용 수직덕트라면 청소를 끝낸 뒤에도 이상한 일이 남습니다.
청소하고도 다른 집 냄새가 들어오는 이유
환풍기 쪽에서 담배 연기나 음식 냄새가 훅 들어온 적 있으시죠? 이때 힘 센 환풍기로 바꾸면 해결될 것 같지만, 원인이 세대 안에 없으면 바꿔도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공용 수직덕트를 함께 쓰는 구조에서는 세대 사이의 공기 유입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아래층 환풍기가 밀어 올린 공기가 옥상까지 다 올라가지 않고 중간 세대의 그릴로 나오는 식이에요. 자동역류방지댐퍼가 하는 일이 바로 이 흐름을 한쪽으로만 열어 두는 것입니다.
원인을 가르는 기준은 간단합니다. 커버와 팬 날개를 닦은 뒤에도 냄새가 그대로면 세대 안 먼지 문제가 아니라 배기 경로 문제로 봅니다. 먼지는 우리 집 공기를 느리게 만들 뿐, 남의 집 냄새를 만들어내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면 이 덕트는 누가 손대고 누가 비용을 내야 할까요? 답은 법전이 아니라 우리 단지 문서에 있습니다.
환풍기와 배기덕트, 관리규약이 나누는 책임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19조 제1항 제19호는 관리규약 준칙에 공동주택의 관리책임과 비용부담을 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환풍기와 배기덕트를 누가 관리하는지를 법이 직접 못 박아 두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구조가 비슷한 아파트라도 단지마다 답이 다를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래서 확인할 문서는 우리 단지 관리규약, 그중에서도 관리책임과 비용부담을 항목별로 적어 둔 별표입니다. 관리규약은 관리사무소에 요청하면 볼 수 있고, 시·도가 공개한 관리규약 준칙과 나란히 놓고 대조할 수도 있어요. 별표에서 배기덕트가 공용으로 적혀 있는지 전유로 적혀 있는지를 찾으면 됩니다.
관리사무소에는 아래 세 가지를 한 번에 물어보세요.
우리 동 욕실 배기가 세대별 전용덕트인지 공용 수직덕트인지 묻습니다. 도면을 열어야 답이 나오는 질문이라, 전화보다 방문해서 요청하는 편이 빠릅니다.
자동역류방지댐퍼가 설치돼 있는지 묻습니다. 없다는 답이 나오면 다른 세대 냄새가 들어오는 이유가 설명됩니다.
관리규약 별표에 배기덕트가 어느 쪽으로 적혀 있는지 묻습니다. 공용으로 적혀 있으면 관리주체가 점검과 보수를 맡고, 전유로 적혀 있으면 세대가 맡습니다.

세 가지 답을 받아 적어 두면 다음 단계가 정해집니다. 전용덕트에 전유로 적힌 집이면 세대 안에서 끝낼 일이고, 공용 수직덕트에 공용으로 적힌 집이면 관리주체에 점검을 요청할 일이에요. 요청을 넣기 전에 청소가 통했는지부터 가려야 합니다.
환풍기를 다시 켜고 습기가 빠지는지 확인하는 방법
청소가 통했는지는 세 가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첫째, 휴지 시험을 다시 합니다. 청소 전에는 떨어지던 휴지가 이제 그릴에 붙어 있으면 빨아들이는 힘이 돌아온 것입니다.
둘째, 습도계로 욕실 안 습도를 봅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실내 습도를 40~60%로 유지하도록 안내하고 있어요. 샤워를 마치고 환풍기를 켜 둔 상태에서 이 범위로 내려오면 배기가 제 몫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거울과 타일에 남은 물방울을 봅니다. 환풍기를 켜 둔 채로도 물방울이 그대로 맺혀 있으면 공기가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예요.
셋 중 하나라도 청소 전과 같다면 세대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끝난 것으로 봅니다. 이때는 앞에서 적어 둔 세 가지 답을 들고 관리사무소에 점검을 요청하세요.
한 가지 짚어 둘 것이 있습니다. 배기덕트의 관리책임과 비용부담은 단지마다 관리규약이 다르게 정해 두기 때문에, 옆 단지에서 통한 방식이 우리 단지에도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관리주체와 이야기가 정리되지 않으면 중앙 공동주택관리 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어요.
자주 묻는 질문
Q. 창문이 있는 욕실에도 환풍기가 필요한가요? A.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44조는 바깥 공기에 면하는 창을 설치하거나 배기설비를 하도록 정하고 있어서, 창이 있으면 둘 중 하나는 갖춘 셈입니다. 다만 창을 열기 어려운 계절이나 맞바람이 들지 않는 구조에서는 창만으로 물기가 잘 빠지지 않기도 합니다.
Q. 관리사무소가 없는 소규모 공동주택은 어디에 물어보나요? A. 의무관리대상이 아닌 단지는 입주자대표회의나 위탁관리 담당자, 건물 관리인이 도면과 규약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쪽에도 자료가 없으면 준공도면을 보관한 시·군·구 건축 담당 부서에 열람을 문의할 수 있어요.
Q. 세입자로 사는 집이면 환풍기 청소와 교체 비용은 누가 내나요? A. 세대 안 설비의 비용을 임대인과 임차인 중 누가 부담하는지는 임대차계약서와 특약에 따라 달라집니다. 계약서에 정해 둔 내용이 없으면 임대인에게 먼저 알리고 협의한 뒤에 진행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Q. 환풍기 소리가 커졌는데 청소하면 줄어드나요? A. 날개에 먼지가 한쪽으로 몰리면 회전이 흔들려 소리가 커지기도 해서, 이 경우에는 먼지를 걷어내면 줄어듭니다. 다만 베어링이나 모터에서 나는 소리는 청소로 달라지지 않으므로 점검을 맡겨야 합니다.
Q. 샤워하는 동안 욕실 문을 닫아 두는 게 나은가요? A. 문을 닫으면 습기가 다른 방으로 퍼지지 않고 환풍기가 욕실 공기만 뽑아내게 됩니다. 다만 들어올 공기가 없으면 나가는 공기도 줄어드니 문 아래 틈이 매트나 수건으로 막혀 있지 않은지 확인해 보세요.
Q. 곰팡이가 이미 천장에 번졌으면 환풍기부터 손봐도 되나요? A. 곰팡이는 습기가 남아 있는 한 닦아내도 다시 생기기 때문에, 공기가 빠지는 길을 먼저 확인하는 순서가 맞습니다. 번진 범위가 넓거나 벽 안쪽에서 물이 새는 것으로 보이면 관리사무소에 누수 점검을 함께 요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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