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충망을 다시 쳐라, 창문을 닫고 살아라, 화장실에 살충제를 뿌려라. 욕실에 작은 날벌레가 보이면 흔히 듣는 말입니다.
밤에 불을 켜면 타일 벽에 회색 삼각형 같은 게 붙어 있는 걸 보신 적 있으시죠? 휴지로 누르면 가루처럼 뭉개지고, 다음 날 아침 같은 자리에 또 한 마리가 앉아 있어요.
이 벌레는 나방파리인데, 밖에서 날아 들어온 게 아니라 욕실 배수구 안쪽에서 자라 올라온 것입니다. 그래서 창문을 닫고 방충망을 새로 갈아도 마릿수가 줄지 않아요. 배수구 안쪽 벽에는 물때처럼 미끈한 유기물 층이 붙어 있고, 나방파리는 거기에 알을 낳습니다.
배수구 안쪽 미끈한 층에서 유충이 자란다
욕실 배수구 뚜껑을 열고 안쪽 벽을 손가락으로 훑으면 미끈한 게 묻어납니다. 머리카락과 비누 찌꺼기, 각질이 물기와 엉겨서 배관 벽에 눌어붙은 유기물 층이에요.
을지대학교 위생해충방제연구소 양영철 교수가 한국응용곤충학회에서 정리한 자료를 보면, 나방파리는 하수구와 정화조, 오물로 오염된 토양에서 주로 발생합니다.
몸길이는 34mm이고, 암컷이 한 번에 30100개의 알을 뭉쳐서 낳습니다.
그러면 그 알이 성충이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알은 48시간 안에 부화하고, 유충으로 915일을 보냅니다.
번데기 기간은 2040시간으로 짧고, 알에서 성충까지 전체 생활사는 8~24일입니다.
성충 수명은 보통 2주입니다. 벽에 붙은 한 마리를 잡는 동안 배수구 안쪽에서는 다음 세대가 이미 자라고 있는 셈이에요. 눈에 보이는 성충만 없애면 며칠 지나 같은 수가 다시 채워집니다.

그런데 배수구를 분명히 청소했는데도 또 나온다는 집이 많습니다. 닦았는데 무엇이 남아 있는 걸까요?
뚜껑만 닦으면 열흘 뒤에 또 나오는 이유
배수구를 청소한다고 할 때 실제로 손이 닿는 곳은 세 군데입니다. 뚜껑과 머리카락 거름망, 그 아래로 들여다보이는 입구까지죠. 전부 눈에 보이는 자리입니다.
유충은 그보다 아래, 트랩 안쪽 벽에 있습니다. 트랩은 배수구 밑에서 물을 가둬 두는 부속인데, 물이 늘 닿아 있는 그 안쪽 벽이 유기물 층이 가장 두껍게 앉는 자리예요. 겉만 닦고 뚜껑을 덮으면 발생원은 그대로 남습니다.
남은 알은 이틀 안에 부화하고 유충으로 9~15일을 보냅니다. 오늘 성충을 전부 잡아도 열흘쯤 뒤에 다시 벽에 붙어 있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집에 배수구가 하나가 아니라는 점도 걸립니다. 욕실 바닥, 세면대, 주방 싱크대, 세탁기 옆까지 여러 개인데 어느 쪽이 발생원인지 모른 채 아무 데나 긁으면 헛수고가 돼요.
투명 테이프 한 장이면 가려낼 수 있습니다. 자기 전에 배수구 주변을 마른 수건으로 닦고, 접착면이 아래로 가게 테이프를 붙여 구멍을 완전히 덮습니다. 아래에서 올라온 성충만 테이프 안쪽에 붙기 때문에, 아침에 붙은 마릿수를 세면 됩니다.
사흘만 같은 방법으로 반복해 보세요. 마릿수가 가장 많이 나온 배수구가 이 집의 발생원입니다.
발생원을 찾았으면 이제 그 배수구의 트랩을 열 차례입니다.
배수구 트랩을 열고 안쪽을 긁어내는 순서
먼저 고무장갑, 병 닦는 솔이나 안 쓰는 칫솔, 주방세제, 찌꺼기를 담을 비닐봉지를 챙깁니다. 욕실 바닥 배수구는 대부분 뚜껑 아래에 원통형 트랩이 들어 있고, 손으로 돌려서 뺄 수 있게 되어 있어요.
1단계, 뚜껑과 거름망을 들어냅니다. 머리카락은 물에 흘려보내지 말고 비닐봉지에 담아 버리세요.

2단계, 안쪽 원통을 반시계 방향으로 돌려 위로 뽑습니다. 굳어서 안 돌아가면 힘으로 밀지 말고 뜨거운 물을 부어 물때를 먼저 불립니다.
3단계, 원통 바깥면과 드러난 배관 안쪽 벽을 솔로 긁습니다. 물로 헹구는 것과 솔로 긁는 것은 다릅니다. 손끝으로 훑었을 때 미끈한 게 묻어나지 않을 때까지 벗겨내세요.
4단계, 부속을 도로 끼우고 물을 흘려 트랩에 물을 채웁니다. 다시 조립할 때 원통이 끝까지 들어갔는지 확인합니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긁어낸 날을 1일로 잡고, 열흘 뒤에 같은 자리를 한 번 더 긁으세요. 알에서 성충까지 8~24일이니, 3주 안에 두 번 긁으면 남아 있던 알과 유충이 성충이 되기 전에 끊깁니다.
다만 솔이 아예 들어가지 않는 배수구도 있습니다.
뜨거운 물과 약품, 우리 집 배수구는 어느 쪽일까?
김해시가 시민에게 안내한 나방파리 예방법은 네 가지입니다. 욕실과 하수구를 살균제로 청소하기, 끓는 물을 배수구에 흘리기, 물이 고이지 않게 관리하기, 자주 환기하기.
여기서 갈리는 건 순서입니다. 유충은 배관 벽에 붙은 유기물 층 안에 있으니, 물이나 약품을 먼저 부어도 그 층은 벽에 그대로 남아요. 긁어내는 일이 먼저고, 뜨거운 물과 약품은 마무리입니다.
트랩을 손으로 뺄 수 있는 배수구라면 3단계까지 긁어낸 뒤에 뜨거운 물을 흘려 남은 찌꺼기를 씻어냅니다. 이 경우 약품은 굳이 없어도 됩니다.
트랩이 매립돼 손이 안 들어가는 배수구는 약품 쪽입니다. 세면대 아래나 오래된 욕실 바닥이 여기 해당해요. 물처럼 바로 흘러 내려가는 액상보다, 거품이나 젤처럼 배관 벽에 머무는 제형을 골라야 벽에 붙은 층에 닿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벌레는 안 보이고 냄새만 올라오는 배수구는 청소 문제가 아닙니다.
약품을 쓸 때 지킬 것이 하나 있습니다. 락스 제조사는 락스를 산성 세정제와 함께 쓰지 말라고 안내합니다. 둘을 섞으면 염소가스가 나오고, 좁고 환기가 안 되는 욕실에서는 그 농도가 빠르게 올라갑니다. 락스는 물에만 희석해서 쓰고, 쓰는 동안 환풍기를 켜 두세요.

약품까지 다 썼는데 며칠 집을 비우고 돌아오면 또 보이는 경우가 있어요.
며칠 비운 욕실에서 나방파리가 올라오는 이유
트랩은 두 가지 일을 합니다. 유기물 층이 앉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원래 목적은 물을 가둬 하수관과 실내를 끊어 놓는 것이에요. 그 고인 물이 마르면 하수관에서 실내로 통로가 그대로 열립니다.
이때는 우리 집 배수구에서 자란 개체가 아니라 아래 하수관에서 올라온 성충이 욕실로 들어옵니다. 배수구를 아무리 긁어도 잡히지 않는 쪽이 이것입니다.
물이 마르기 쉬운 자리는 정해져 있습니다.
- 며칠씩 물을 안 쓰는 손님용 욕실과 다용도실
- 베란다 바닥 배수구
- 세탁기 옆 바닥 배수구
- 여행이나 출장으로 집을 오래 비운 뒤의 모든 배수구
여름에는 실내 온도가 높아 고인 물이 더 빨리 줄어듭니다.
판정은 냄새로 합니다. 벌레는 안 보이는데 하수구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면 물이 말랐다는 신호예요. 일주일에 한 번, 배수구마다 물을 1~2L씩 부어 채우세요.
집을 오래 비울 때는 물을 채운 뒤 배수구를 랩이나 비닐로 덮어 두면 증발이 느려집니다.
여기까지 했는데도 계속 보인다면, 아직 한 번도 안 열어 본 배수구가 남아 있습니다.
세탁기 배수 호스를 놓치면 나방파리가 다시 올라온다
욕실 배수구를 3주에 걸쳐 두 번 긁고 물까지 채워 뒀는데 여전히 나온다면, 발생원은 욕실 밖입니다. 한쪽만 청소하면 그 배수구만 깨끗해지고 남은 자리에서 다음 세대가 나와요. 생활사가 8~24일이니 한 달도 안 돼 원래 마릿수로 돌아갑니다. 들인 시간과 약품값이 그대로 날아가는 셈입니다.
세탁기 배수 호스가 가장 많이 빠집니다. 호스 안쪽에는 세제와 섬유 찌꺼기가 미끈하게 앉는데, 세탁기 뒤로 손이 안 들어가서 몇 년째 한 번도 안 빼 본 집이 흔해요. 호스를 빼서 안쪽으로 물을 통과시켜 밀어내고, 물이 맑게 나올 때까지 반복합니다.

호스와 하수구 연결부도 함께 봅니다. 호스를 바닥 배수구에 그냥 꽂아만 두면 호스와 구멍 사이에 틈이 남고, 성충이 그 틈으로 드나듭니다. 전용 연결구를 끼우거나 실리콘으로 틈을 메워 두세요.
주방 싱크대 배수구는 음식물 찌꺼기가 들어가는 만큼 욕실보다 유기물이 많습니다. 욕실만 잡고 주방을 그냥 두면 발생원 하나를 남긴 것과 같아요.
질병관리청 감염병 매개체 감시 통계를 보면 올여름 모기는 7월 초에 정점을 찍고 한 달 사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고, 보건 당국은 8월 말부터 9월 사이 다시 늘 수 있다고 봤습니다. 모기를 센 통계지만, 폭염이 꺾이는 이맘때는 실내에서 날벌레를 다시 마주치기 쉬운 시기입니다. 나방파리는 바깥 기온이 아니라 배수구 안쪽 상태를 따라 나오니, 지금 배수구를 열어 두면 9월에 손댈 일이 줄어듭니다.
집 안 배수구를 다 뒤졌는데도 발생원이 안 잡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파트나 다세대는 여러 세대가 하나의 수직 배수관을 함께 쓰기 때문에, 우리 집이 아니라 공용 배관 쪽이 발생원일 수 있어요. 이때는 혼자 약품을 더 붓기보다 관리사무소에 알려 공용 배관 점검을 요청하고, 지자체 보건소의 방역 안내를 받는 편이 빠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나방파리에 물리거나 하지는 않나요? A. 김해시 안내에 따르면 나방파리는 모기처럼 피를 빨거나 파리처럼 직접 병균을 옮기지는 않습니다. 다만 하수구를 오가는 벌레이므로 조리대나 식기 위에 앉았다면 그 자리를 닦아내는 편이 좋습니다.
Q. 배수구를 아예 랩으로 계속 막아 두면 안 되나요? A. 오래 집을 비울 때는 도움이 되지만, 평소에 막아 두면 물이 빠지지 않고 트랩 안 물이 새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일상적으로는 물을 자주 흘려보내는 쪽이 낫습니다.
Q. 반려동물이나 아이가 있는 집에서 배수구 세정제를 써도 되나요? A. 제품마다 성분과 주의 문구가 달라서 라벨의 사용 방법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쓰는 동안에는 환풍기를 켜고 욕실 문을 닫아 두었다가, 충분히 헹궈 낸 뒤에 들어오게 하세요.
Q. 청소한 다음 날 오히려 더 많이 보이는데 실패한 건가요? A. 트랩을 열고 긁는 과정에서 안쪽에 있던 성충이 한꺼번에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열흘 뒤 두 번째 청소까지 마친 다음에 마릿수를 다시 세어 판단하세요.
Q. 겨울에도 나방파리가 나오나요? A. 실내 배수구는 계절과 상관없이 따뜻하고 습해서 겨울에도 나올 수 있습니다. 다만 난방으로 실내가 건조해지면 안 쓰는 배수구의 물이 더 빨리 마르니, 겨울에는 물 채우기 쪽을 더 챙기게 됩니다.
Q.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는데도 나오면 전 세입자 탓인가요? A. 유기물 층은 수개월에 걸쳐 쌓이기 때문에 이사 직후에 나오는 개체는 이전부터 있던 발생원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원인을 따지기보다 입주 초에 트랩을 한 번 열어 긁어내면 이후 관리가 훨씬 수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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