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두 시, 에어컨은 돌아가는데 이불 밑이 끈적합니다. 온도를 한 칸 내리면 어깨가 시리고, 끄면 십 분도 안 돼서 다시 눅눅해져요.
저는 그날 밤에 창고에 넣어 뒀던 제습기를 꺼냈습니다. 장마가 끝난 지 보름도 더 지난 뒤였어요.
올해 장마는 이상하게 짧았습니다. 제주는 20일 만에 끝났고 내륙도 7월 26일 무렵 마무리됐는데, 평년 장마는 31~32일입니다. 7월 전국 강수량도 220.0mm로 평년의 72.3%에 그쳤어요.
비가 덜 왔으면 제습기도 덜 팔려야 맞습니다. 그런데 다나와가 집계한 2026년 5월 마지막 주 제습기 거래액은 195% 뛰었습니다.
에어컨 온도를 내리는 것으로는 이 밤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밤에 실내가 식지 않으면 벽과 이불이 머금은 물기가 빠져나갈 데가 없거든요. 그래서 아침에 제일 먼저 열어 본 것이 제습기 물통이었습니다.
밤에 제습기를 켜 두고 아침에 열어 본 물통
10리터짜리를 자기 전에 켜고 아침에 물통을 꺼냈습니다. 가득 차 있을 줄 알았는데 바닥에서 손가락 두 마디쯤 올라온 정도였어요.
고장인가 싶어 필터부터 빼서 봤습니다. 막힌 데는 없었고 흡입구도 벽에서 떨어뜨려 놓은 상태였습니다.

올해 밤이 유난했다는 건 숫자로도 남아 있어요. 기상청 집계로 6월 1일부터 8월 9일까지 전국 열대야 일수는 14.7일이었습니다. 2024년 13.5일을 넘어선 역대 1위입니다.
7월만 떼어 봐도 전국 평균 최저기온이 23.4도로 관측 이래 가장 높았습니다. 밤에 기온이 안 떨어지면 낮 동안 실내가 머금은 습기가 그대로 갇혀요.
그런 밤에 여덟 시간을 돌렸는데 물통은 왜 절반도 안 찼을까요? 답은 상자에 적힌 10리터라는 숫자가 어떤 조건에서 나온 값인지에 있습니다.
제품에 적힌 하루 10리터는 언제 나오는 값일까?
이 숫자의 공식 명칭은 표준제습능력이고, 상자에는 보통 1일 제습량으로 적혀 있습니다. 국가표준 KS C 9317이 정한 조건에서 잰 값이에요. 온도 27도, 상대습도 60%인 방에서 24시간 돌렸을 때 빼내는 물의 양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가 걸립니다. 하나는 24시간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27도 60%라는 조건입니다.
잠든 동안만 켜면 여덟 시간입니다. 24시간짜리 값을 그대로 셋으로 나누면 3.3리터가 되고요.
조건도 켜 놓은 내내 유지되지 않습니다. 제습기가 돌면서 방 습도가 60% 아래로 내려가면, 공기에 남은 수분 자체가 줄어 같은 시간에 뽑히는 물도 줄어듭니다. 습도가 낮아질수록 물이 덜 나오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니까 1일 제습량은 하루에 그만큼 뽑아야 하는 할당량이 아닙니다. 같은 시간에 습도를 얼마나 빨리 끌어내릴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힘의 크기예요.
힘의 크기라면 방이 넓을수록 큰 것이 필요합니다. 내 방에 맞는 크기는 줄자만 있으면 3단계로 나옵니다.
방 넓이로 필요한 제습량 구하는 3단계
1단계, 방 가로와 세로를 잽니다. 벽에서 벽까지 미터로 재서 곱하면 제곱미터가 나와요. 가로 4.5m에 세로 4.4m인 방이면 19.8제곱미터입니다.

2단계, 제곱미터를 3.3으로 나눠 평으로 바꾸고 그 절반을 리터로 잡습니다. 19.8을 3.3으로 나누면 6평이고, 절반이니 3리터가 나옵니다. 같은 방식으로 20평이면 10리터, 40평이면 20리터입니다.
3단계, 제품 정보에서 1일 제습량이 그 값을 넘는지 봅니다. 한국에너지공단 효율등급 조회 페이지에 모델별 1일 제습량과 제습효율, 월간소비전력량이 올라와 있어요. 상자 앞면의 홍보 문구 대신 이 값을 보면 됩니다.
여기서 계산이 이상하게 느껴지실 겁니다. 방 하나만 놓고 보면 3리터인데 10리터는 세 배가 넘으니까요.
넉넉한 용량이 손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목표 습도에 빨리 닿으면 압축기가 멈추고, 그 뒤로는 습도가 올라갈 때만 다시 돕니다. 작은 용량으로 밤새 쉬지 않고 도는 것보다 전기를 덜 쓰는 경우가 여기서 생겨요.
다만 방금 나온 3리터는 방문을 닫았을 때 숫자입니다. 문을 열어 두면 계산의 출발점부터 달라집니다.
방 하나만 쓸 때와 거실까지 볼 때 계산이 달라지는 이유
제습기는 방 안 공기를 빨아들여 차가운 관에 맺힌 물을 떼어 내는 기계입니다. 그래서 빨아들여야 할 공기가 늘어나면 같은 시간에 습도를 못 낮춥니다.
방문을 닫으면 2단계에서 잰 그 방만 대상이에요. 문을 열어 두면 거실과 주방 공기가 계속 흘러들어오니, 그 면적을 다 더해서 다시 계산해야 합니다.
원룸은 애초에 나눌 문이 없습니다. 6평에서 9평 사이가 흔하니 계산상으로는 3에서 4.5리터인데, 현관과 욕실 문틈으로 공기가 오가는 것을 감안하면 여유를 두는 편이 낫습니다.

20평 안팎 집을 통째로 보고 한 대만 두겠다면 그때 제습기 10리터가 기준선이 됩니다. 30평이 넘어가면 20리터짜리를 사기보다, 10리터를 방마다 옮기면서 문을 닫고 돌리는 쪽이 빠릅니다.
빨래 건조도 같은 원리로 움직입니다. 거실 한복판에 널고 집 전체를 말리려 들면 오래 걸리지만, 작은 방에 몰아넣고 문을 닫으면 훨씬 일찍 끝나요.
집 평수에 맞춰 무조건 큰 용량을 살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대신 확인할 것이 하나 남았습니다. 밤새 켜 두면 전기요금이 얼마나 붙느냐예요.
밤새 켜 두면 전기요금 얼마나 늘까?
제습기 제품 정보에는 소비전력이 와트로 적혀 있습니다. 이 값에 켜 둘 시간을 곱하고 1000으로 나누면 그날 쓴 전력량이 나와요.
소비전력이 200와트인 제품을 여덟 시간 켜면 1.6킬로와트시입니다. 30일이면 48킬로와트시가 되고요.
계산이 여기서 안 끝나는 이유는 주택용 전기요금이 누진 구간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48킬로와트시라도 원래 400킬로와트시를 쓰던 집과 200킬로와트시를 쓰던 집의 요금이 다릅니다. 한국전력 요금계산기에 지난달 사용량과 이 값을 더해 넣어 보면 우리 집 기준으로 얼마가 붙는지 나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효율관리기자재 운용규정은 제습기를 한 달에 171시간 쓴다고 보고 월간소비전력량을 표시하게 합니다. 제품 정보에 적힌 그 값을 그대로 쓰면 직접 곱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제습기는 빨아들인 공기에서 물을 떼어 낸 뒤 그 공기를 다시 방으로 내보내는데, 이 과정에서 실내 온도가 올라갑니다. 열대야에 에어컨을 끄고 제습기만 켜면 방이 도리어 더워지는 것이 이 때문이에요.
그러면 에어컨 제습 모드로 돌리면 되지 않을까요? 두 기계가 하는 일이 다릅니다.
열대야가 남은 9월까지, 에어컨 제습과 나눠 켜는 법
에어컨 제습 모드는 온도를 함께 내립니다. 약하게 냉방하면서 물을 떼어 내는 방식이라, 방이 시원해지는 대신 오래 켜 두면 춥고 습도는 생각만큼 안 떨어져요.
제습기는 반대입니다. 습도만 집중해서 내리고 온도는 오히려 올립니다.
그래서 밤에는 에어컨, 낮에는 제습기로 나누는 편이 낫습니다. 잘 때 덥고 끈적하면 에어컨을 켜고, 빨래를 말리거나 옷장과 욕실 곰팡이를 잡을 때 제습기를 켜세요. 둘을 같이 켜면 에어컨이 식힌 공기를 제습기가 데우니 서로 상쇄됩니다.

8월 중순에 사는 것이 늦지 않으냐고 볼 수도 있습니다. 기상청 3개월 전망은 8월부터 10월까지 월평균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을 65~85%로 봤어요. 남해안과 제주는 9월 초까지 열대야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여름이 끝나도 제습기가 할 일은 남습니다. 가을비가 길게 오는 날과 겨울 창문 결로, 사시사철 빨래 건조가 그대로 남아 있어요. 제습기 10리터를 방마다 옮겨 가며 문 닫고 쓸 생각이라면, 지금 들여도 올해 안에 쓸 날은 넉넉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물통 대신 호스를 꽂아 계속 빼내는 연속배수는 어떻게 쓰나요? A. 대부분 본체 뒷면이나 아래쪽에 배수구가 있고, 여기에 호스를 끼워 욕실이나 베란다 배수구로 내보냅니다. 물이 중력으로 흘러야 하니 제습기가 배수구보다 높은 자리에 있어야 하고, 바닥에 그냥 두면 물이 역류할 수 있습니다.
Q. 물통에 모인 물을 화분이나 청소에 써도 되나요? A. 공기 중 수분이 응축된 물이라 성분만 보면 증류수에 가깝지만, 필터와 열교환기를 지나면서 먼지와 세균이 섞입니다. 마시거나 피부에 닿는 용도로는 쓰지 않고 그때그때 버리는 편이 안전합니다.
Q. 필터는 얼마나 자주 청소하나요? A. 제조사는 대체로 2주에 한 번 물로 헹궈 그늘에 말리라고 안내합니다. 먼지가 쌓이면 빨아들이는 공기량이 줄어 같은 시간에 나오는 물이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Q. 제습기를 켤 때 창문을 조금 열어 두면 안 되나요? A. 바깥 습한 공기가 계속 들어오면 제습기가 집 안이 아니라 바깥 습기를 상대하게 됩니다. 창문과 방문을 닫고 돌린 뒤 다 마르면 환기하는 순서가 낫습니다.
Q. 여름이 끝나면 어떻게 보관하나요? A. 물통을 비우고 안쪽까지 완전히 말린 뒤 넣어 두세요. 물이 남은 채로 창고에 들어가면 물통과 배수관에 곰팡이 냄새가 배어 이듬해 켜자마자 냄새가 납니다.
Q. 소음이 어느 정도인가요? 자는 방에 켜 둬도 되나요? A. 압축기가 도는 방식이라 선풍기보다 크고, 제품 정보에 소음이 데시벨로 표시됩니다. 밤에 신경 쓰인다면 잠들기 전 두세 시간만 돌려 습도를 내려 두고 끄는 방법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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