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판이 누렇게 뜨고 가장자리가 들떴을 때, 임대인에게 갈아 달라고 할지 그냥 내가 깔지 재보신 적 있으시죠?
갈림길은 장판이 얼마나 낡았는지가 아닙니다. 그대로 두면 그 집을 계약한 목적대로 쓸 수 없을 정도인지가 선입니다. 선을 넘으면 임대인에게 요구할 일이고, 못 넘으면 내 돈으로 깔고 나갈 때 되돌릴 각오까지 하고 시작하는 일이에요.
선이 애매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장판이 계약서에서 애매한 자리에 놓여 있어서입니다. 법무부가 배포하는 주택임대차 표준계약서에는 수리비를 누가 낼지 미리 적어 두는 칸이 있고, 그 옆에 어떤 것이 임대인 몫인지 예가 붙어 있어요.
표준계약서가 예로 든 임대인 부담 설비 3가지
표준계약서 제4조에는 계약이 이어지는 동안 생기는 수리와 비용부담을 임대인과 세입자가 합의해 적는 칸이 나란히 있습니다. 칸 이름은 “임대인부담”과 “임차인부담”이고, 여기서 임차인이 세입자예요.
임대인부담 칸 옆에는 예가 하나 붙어 있습니다. 난방, 상하수도, 전기시설처럼 임차주택의 주요설비가 노후·불량해서 하는 수선은 민법 제623조와 판례상 임대인이 부담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는 설명입니다.
임차인부담 칸 옆의 예는 성격이 다릅니다. 세입자의 고의나 과실로 생긴 파손, 전구처럼 통상의 간단한 수선, 소모품 교체 비용이 여기 적혀 있어요.
두 칸을 위아래로 훑어봐도 장판은 어느 쪽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표준계약서는 이 상황을 비워 두지 않고, 합의되지 않은 나머지 수선비용의 부담은 민법과 판례, 관습에 따른다고 같은 조항에 적어 두었습니다.

그러니 장판은 계약서가 미리 정해 준 항목이 아니라, 당사자가 합의하거나 합의가 없으면 민법과 판례로 가려지는 항목입니다. 그렇다면 판례는 낡은 장판을 어느 쪽으로 볼까요?
장판이 낡은 것만으로 임대인 수선의무가 생기지 않는 이유
민법 제623조는 임대인이 계약 존속 중 목적물을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로 유지할 의무를 진다고 정합니다. 표준계약서 제4조 제2항도 임대인이 계약 존속 중 임차주택을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고 같은 말을 옮겨 놓았어요.
문제는 어디까지가 필요한 상태인지입니다. 대법원은 파손이나 장해가 세입자가 별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손쉽게 고칠 수 있을 정도로 사소하면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지지 않고, 고치지 않으면 계약에 정해진 목적대로 사용·수익할 수 없는 상태가 될 정도라면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진다고 판단해 왔습니다.
낡았다는 사실 자체는 기준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법원이 함께 보는 것은 목적물의 종류와 용도, 파손이나 장해의 규모와 부위, 그것이 사용·수익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 수선이 쉬운지와 거기에 드는 비용, 계약 당시 목적물의 상태와 차임 액수입니다.
그래서 임대인에게 말할 때 누렇게 떴다는 색만 전하면 이 요소 어디에도 걸리지 않습니다. 들뜬 자리를 밟으면 발이 걸린다, 찢어진 틈으로 바닥이 드러나 물이 스민다처럼 그 집을 쓰는 데 어떤 지장이 생겼는지를 적어야 위 요소에 대볼 수 있어요.

수선의무를 세입자가 지기로 특약을 썼더라도 그대로 넘어가지 않는 부분이 남습니다. 법제처가 안내하는 판례는 건물 주요 구성부분의 대수선이나 기본적 설비부분의 교체 같은 대규모 수선은 여전히 임대인이 부담한다고 봅니다.
임대인이 낼 몫을 세입자가 대신 냈을 때 돌려받는 길도 계약서 안에 있습니다. 표준계약서 제4조 제4항은 세입자가 임대인의 부담에 속하는 수선비용을 지출한 때에는 임대인에게 그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여기까지가 사는 동안의 이야기입니다. 나갈 때 얼마를 물어내는지는 다른 조항이 정합니다.
몇 년 썼으니 얼마만 내면 된다는 계산이 맞을까?
인터넷에서 자주 도는 계산이 하나 있습니다. 장판 내구연한이 몇 년이니 그중 몇 년을 살았으면 남은 값의 몇 퍼센트만 물어내면 된다는 식이에요.
이 숫자는 임대주택의 수선비를 정하는 별도 기준을 소개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일반 전월세 계약에 그대로 대입하는 공식이 아니라서, 그 퍼센트를 들고 가도 임대인과 계산이 맞아떨어지지 않습니다.
계약이 끝날 때 실제로 작동하는 문장은 표준계약서 제9조입니다. 계약이 종료되면 세입자는 임차주택을 원래의 상태로 복구해 반환하고 임대인은 보증금을 반환한다고 되어 있고, 바로 뒤에 단서가 붙어요. 시설물의 노후화나 통상 생길 수 있는 파손 등은 세입자의 원상복구의무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단서입니다.
읽어 보면 연수를 곱하는 계산이 아니라 갈림길 하나입니다. 지금 장판 상태가 노후화나 통상 생길 수 있는 파손이면 원상복구 대상에서 빠지고, 그렇지 않으면 세입자 몫으로 남습니다.
다만 이 단서는 원래 깔려 있던 장판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세입자가 자기 돈으로 새로 깐 장판은 세입자가 바꿔 놓은 부분이라 원칙적으로 원상회복 대상이 되고, 어디까지 되돌릴지는 사건마다 구체적으로 판단됩니다.

임대인이 고칠 정도가 아니라고 정리되면 남는 선택은 하나예요. 내 돈으로 깔고, 나갈 때 되돌리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까지 계산에 넣고 제품을 고르는 일입니다.
장판 겉면의 친환경 인증 표시 읽는 법
장판은 자재 이름으로는 PVC 바닥재로 표기됩니다. 상세정보를 열면 친환경 인증 표시가 붙어 있는데, 성격이 다른 두 가지가 나란히 쓰이고 있어요.
HB마크는 한국공기청정협회가 산업표준화법 제27조에 따라 운영하는 단체표준인증입니다. 시험하는 것은 실내공기오염물질 하나로, 총휘발성유기화합물과 포름알데히드, 아세트알데히드, 그리고 벤젠과 톨루엔 같은 다섯 가지 휘발성유기화합물을 봅니다. 결과는 최우수·우수·양호 세 등급으로 나뉘고 클로버 개수로 표시되는데, 클로버 세 개가 최우수예요. 협회는 바닥재를 인증 대상 자재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환경표지는 환경부 인증이고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운영합니다. 같은 용도의 다른 제품보다 제품의 환경성을 개선했을 때 붙는 표시라서, 실내 공기만이 아니라 만들고 유통하고 쓰고 버리는 전 과정을 봅니다.
두 표시가 겹치지 않는 자리는 분명합니다. 방에서 자고 지내는 동안의 공기가 걱정이면 HB마크 등급을 보고, 제품이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과정까지 따지고 싶으면 환경표지를 보면 됩니다. 둘 다 붙어 있으면 서로 다른 두 가지를 각각 통과했다는 뜻이에요.
표시를 확인하고 제품을 정했어도 아직 한 단계가 남습니다. 장판을 걷어내기 전에 종이에 남겨 둘 것이 있어요.
셀프 장판 시작 전에 서면으로 남기는 법
임대인 동의 없이 장판을 바꿔도 되는지를 두고 말이 갈립니다. 표준계약서 제4조 제1항은 임대인의 동의 없는 구조변경과 전대, 임차권 양도를 금지하는데, 장판 교체를 이 조항 하나로 가를 수 있는지는 계약서 문장만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대신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세입자가 바꿔 놓은 부분은 원칙적으로 원상회복 대상이고, 그 범위는 사건마다 구체적으로 판단됩니다. 그래서 동의를 받았느냐보다 무엇을 어떻게 합의해 두었느냐가 나중에 남아요.

계약 전이면 표준계약서 제3조를 채웁니다. “수리 필요 시설” 칸에 수리할 내용을 적고, “수리 완료 시기”에 잔금지급 기일까지인지 다른 날인지 고릅니다. 그 아래 칸에는 약정한 시기까지 수리가 안 됐을 때 수리비를 보증금이나 차임에서 공제할지를 표시하게 되어 있어요.
계약 중이면 제4조 제3항 칸에 적습니다. 임대인부담과 임차인부담 칸에 장판을 누가 얼마나 낼지 나눠 적으면 합의되지 않은 항목으로 남지 않습니다. 계약서에 여백이 없으면 같은 내용을 적은 합의서를 따로 만들고 양쪽이 서명하세요.
걷어내기 전 상태를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깁니다. 들뜬 자리와 찢어진 부분이 보이게 찍고 촬영 날짜가 남게 두세요. 계약 당시 목적물의 상태가 판단 요소에 들어가기 때문에, 나중에 다툴 때 이 기록이 그 자리를 채웁니다.
뜯어낸 기존 장판을 버리지 말고 보관합니다. 나갈 때 원래대로 돌려놓으라는 말을 들으면 그 장판이 필요해요. 임대인의 부담에 속하는 수선비를 대신 냈다면 영수증도 함께 두세요.
여기까지 정리한 내용은 특약 한 줄로 뒤집힐 수 있습니다. 표준계약서 자체가 합의되지 않은 수선비용만 민법과 판례에 맡긴다고 적고 있어서, 계약서에 이미 적힌 문장이 앞섭니다. 계약서를 다시 꺼내 수선과 원상복구에 관한 줄부터 읽고 시작하세요.
합의가 안 되면 소송 전에 갈 곳이 있습니다. 표준계약서 특약란에는 소를 제기하기 전에 먼저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한다는 항목이 있고, 조정을 통하면 60일에서 최대 90일 이내에 조정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임대인이 고쳐 주겠다고 말만 하고 계속 미루면 어떻게 하나요? A. 법제처는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세입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차임 지급을 거절하거나 감액을 청구하거나,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 다만 어느 쪽을 택하든 요청한 날짜와 내용이 남아 있어야 하므로 문자나 내용증명처럼 기록이 남는 방식으로 먼저 요청해 두세요.
Q. 앞에 살던 세입자가 깔아 둔 장판도 제가 원상회복해야 하나요? A. 대법원은 별도의 약정이 없는 한 세입자는 자기가 임차받았을 때의 상태로 반환하면 충분하고, 이전 사람이 시설한 것까지 원상회복할 의무는 없다고 판단해 왔습니다. 그래서 입주할 때 이미 어떤 장판이 깔려 있었는지를 사진으로 남겨 두는 것이 나중에 근거가 됩니다.
Q. 자재비는 임대인이 대고 시공은 제가 하기로 나눠도 되나요? A. 표준계약서 제3조와 제4조 제3항은 수리 내용과 비용부담을 당사자가 합의해 적도록 만들어져 있어서 자재비와 시공을 나눠 적을 수 있습니다. 다만 누가 무엇을 얼마까지 부담하는지 금액과 범위를 함께 적어야 나중에 해석이 갈리지 않습니다.
Q. 친환경 인증 표시가 없는 장판은 실내 공기에 문제가 있다는 뜻인가요? A. HB마크는 산업표준화법에 따른 단체표준인증이고 받을지 말지는 제조사가 정하는 임의인증입니다. 표시가 없다는 것은 기준을 넘겼다는 뜻이 아니라 그 시험을 거쳐 등급을 받아 두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Q. 관리비로 낸 장기수선충당금을 장판 값에 쓸 수 있나요? A. 표준계약서 제10조 제2항은 세입자가 이미 납부한 관리비 중 장기수선충당금을 임대인에게 반환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장판 교체에 쓰라고 적립하는 돈이 아니라 나갈 때 돌려받는 돈이므로, 장판 비용과는 따로 정산하세요.
Q. 임대인이 보증금에서 장판 값을 빼겠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받아들여야 하나요? A. 표준계약서 제9조는 세입자의 원상복구와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을 동시에 하도록 적고 있고, 시설물의 노후화나 통상 생길 수 있는 파손은 원상복구의무에서 빼 두었습니다. 공제 항목이 어느 쪽에 해당하는지 하나씩 확인하고, 합의가 안 되면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조정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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