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 나가는 날, 집주인이 벽 앞에 서서 붙이는 벽지 끝을 손톱으로 들어 올립니다. 한 뼘쯤 들린 곳에 흰 종이 부스러기가 같이 딸려 나옵니다. 그 순간부터 보증금에서 얼마가 빠질지 계산이 시작됩니다.
붙이기 전에 정할 것은 색이 아니라, 떼어낼 때 무엇이 같이 떨어지느냐입니다. 그래서 눈에 안 띄는 구석 한 뼘에 먼저 붙였다 떼어 보는 것을 첫 작업으로 둡니다.
색을 고르는 데 한참을 써도 이 한 뼘을 건너뛰면 벽 한 면이 통째로 되돌릴 대상이 돼요. 세월이 지나면서 저절로 생기는 흠은 통상의 손모라고 부르고, 법원은 이 부분까지 임차인이 되돌려 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해 왔습니다. 그런데 붙였다 떼어내서 생긴 자국은 시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부착이라는 행위가 만든 결과입니다.
이 둘을 나누기 전에 먼저 펼칠 것은 계약서 특약입니다.
붙여도 되는 집인지 계약서 특약에서 확인하는 법
계약서를 꺼내 특약 사항 칸부터 읽습니다. 여기에 원상복구라는 네 글자만 적혀 있으면 무엇을 어디까지 되돌릴지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예요.
도배, 장판, 못질처럼 항목이 나뉘어 적혀 있으면 그 문구가 먼저 기준이 됩니다. ‘벽면에 부착물을 설치하지 않는다’ 같은 줄이 있으면 붙이는 벽지도 여기에 걸립니다. 한 줄로 끝난 특약보다 항목이 적힌 특약이 오히려 다툴 여지를 줄여 줍니다.
특약 칸이 비어 있다고 붙여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나중에 무엇을 기준으로 따질지가 없다는 뜻이고, 그때는 벽의 원래 상태를 누가 더 잘 보여 주느냐로 넘어갑니다.

임대인에게 물어볼 거면 문자나 메신저로 물어 답을 글로 받아 둡니다. 전화로 받은 승낙은 이사 나가는 날 꺼내 보일 방법이 없어요.
특약을 확인했다면 이제 벽을 봅니다. 같은 방 안에서도 붙여도 되는 면과 손대면 안 되는 면이 따로 있습니다.
붙일 면을 세 가지로 나누는 기준
벽을 훑으면 다 같은 벽처럼 보이지만, 붙이는 벽지를 떼어낼 때 어떤 면은 흔적이 거의 없고 어떤 면은 표층이 통째로 딸려 나옵니다. 붙이기 전에 벽을 세 무리로 갈라 놓으면 그 뒤 작업이 단순해집니다.
기존 벽지 표면 — 가장 넓고 가장 많이 붙이게 되는 면입니다. 종이 표층이 있어서 접착면이 세게 물리면 그 표층이 함께 일어납니다. 이 무리는 붙여도 되는지 안 되는지를 눈으로만 봐서는 정할 수 없어서, 실제로 붙였다 떼어 보고 정합니다.
몰딩과 문틀 — 도장을 한 면이거나 필름이 씌워진 면입니다. 종이가 아니라 도막과 필름이 통째로 벗겨질 수 있고, 한 번 벗겨지면 같은 색으로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장식 삼아 문틀까지 두르고 싶어도 이 무리는 비워 두는 편이 낫습니다.
애초에 손대지 않을 면 — 이미 들뜬 벽지, 곰팡이가 핀 벽, 창가처럼 물기가 맺히는 벽, 붙박이장 안쪽이 여기 들어갑니다. 접착도 오래 못 가고 떼어낼 때 손상만 커집니다.
어느 무리인지 헷갈리면 손톱 끝으로 눈에 안 띄는 곳을 가볍게 긁어 봅니다. 표층이 보풀처럼 일어나면 접착제가 물릴 때도 같은 일이 벌어져요. 손등을 대 축축한 기운이 있으면 세 번째 무리로 넣습니다.

면을 갈랐으면 이제 그 면에 붙일 제품을 고를 차례입니다. 표시를 볼 때 대부분 찾는 그 마크가, 정작 이 품목에는 없습니다.
제품 표시에서 KC마크 대신 확인할 항목
생활용품을 살 때 KC마크부터 찾게 되죠? 붙이는 벽지에서는 그 마크가 없는 것이 오히려 정상입니다.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은 생활용품을 위험도에 따라 나눠 관리하는데, 벽지 및 종이장판지는 안전기준준수대상 생활용품 24품목에 들어 있습니다. 합성수지 재질이라면 같은 목록에 있는 합성수지제품 쪽에 걸립니다. 어느 쪽이든 이 목록 안입니다.
국가기술표준원은 안전기준준수대상을 제품시험 의무 없이 안전기준에 맞는 제품을 만들거나 수입하게 하는 제도로 운영합니다. 이 제도에서는 KC마크를 붙이지 않는 대신, 품목별 안전기준이 정한 표시사항을 적게 합니다. 제조자명, 제조국명, 제조연월, 취급 주의사항, 표시자 연락처 같은 것들이에요.
그래서 걸러야 할 쪽은 마크가 없는 제품이 아니라 이 표시사항이 비어 있는 제품입니다. 마크를 못 찾았다고 반품할 일이 아닙니다.
HB마크는 층위가 다릅니다. 한국공기청정협회가 산업표준화법에 따라 운영하는 단체표준인증이고, 정부가 주는 인증이 아닙니다. 폼알데하이드와 아세트알데하이드, 휘발성유기화합물이 얼마나 나오는지를 재서 최우수, 우수, 양호, 일반Ⅰ, 일반Ⅱ 다섯 등급으로 나눕니다.
친환경이라는 도장이 아니라 방출량 등급표라고 읽으면 정확해요. 등급이 낮다고 못 쓰는 제품은 아니고, 창을 오래 열어 두기 어려운 방이라면 위쪽 등급을 고르는 편이 낫습니다.
제품을 정했으면 벽에 손을 대기 전에 남겨 둘 것이 있습니다.
붙이기 전에 사진으로 남길 벽 3곳
한 번 붙이고 나면 그 아래가 어땠는지 아무도 보여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붙이는 벽지를 자르기 전에 세 곳을 찍습니다.
첫째는 붙일 면 전체입니다. 벽 한 면이 사진 한 장에 다 들어오도록 뒤로 물러서서 찍습니다.
둘째는 모서리와 이음매입니다. 기존 벽지가 이미 벌어졌거나 들뜬 곳이 있으면 가까이서 한 장 더 남깁니다.
셋째는 이미 흠이 있는 곳입니다. 못 자국, 얼룩, 찢어진 부분이 여기 해당하고, 이 사진이 나중에 내가 만든 손상과 원래 있던 손상을 나눠 줍니다.

집 전체를 찍을 필요는 없어요. 붙일 면과 그 면에 닿는 몰딩까지면 충분합니다.
사진 파일에 촬영 날짜가 남는지도 한 번 확인해 두세요. 날짜가 안 붙는 설정이면 그날 날짜가 보이는 화면을 함께 담아 찍습니다.
기록을 남겼으면 이제 벽에 처음 손을 댑니다. 다만 붙일 면 전체가 아니라 한 뼘부터예요.
안 보이는 구석에 먼저 붙였다 떼어 보는 4단계
1단계, 가려질 곳 고르기 붙박이장에 가릴 벽 아래쪽, 문을 열면 뒤로 넘어가는 벽, 침대 머리맡 뒤가 여기에 맞습니다. 실제로 붙일 면과 같은 벽지여야 해요. 방마다 도배 시기가 다르면 벽지도 다릅니다.
2단계, 한 뼘만 잘라 붙이기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잘라 붙이고 가운데부터 바깥으로 밀어 공기를 뺍니다. 가장자리까지 눌러야 벽 한 면을 실제로 붙였을 때와 같은 상태가 됩니다.
3단계, 벽면과 나란한 방향으로 떼어내기 한쪽 끝을 들어 올린 다음, 벽에서 직각으로 잡아당기지 말고 벽면을 따라 눕히듯 당깁니다. 수직으로 잡아채면 멀쩡한 벽지도 뜯깁니다.
4단계, 떼어낸 조각 뒷면 보기 접착면에 흰 종이 섬유나 벽지 무늬가 묻어 나왔는지 봅니다. 점점이 몇 개 붙은 정도면 그 면은 붙여도 되고, 묻어난 부분이 점이 아니라 면으로 이어져 있으면 그 면은 뺍니다. 벽 쪽도 같이 보세요. 긁힌 것처럼 보풀이 일어났으면 이미 표층이 상한 것입니다.
붙일 면이 여럿이면 면마다 따로 해봅니다. 거실 벽에서 깨끗하게 떨어졌다고 방 벽도 같으리라는 보장이 없어요.
여기서 기존 벽지가 뜯긴 곳은 물기나 햇빛이 만든 흠이 아니라 붙였다 떼어낸 결과로 남습니다. 통상의 손모라고 주장하기 어려운 쪽이니, 뜯긴다는 결과가 나온 면은 처음부터 빼는 편이 안전합니다.

붙일 면이 확정됐으면 그 면이 얼마나 되는지 숫자로 적어 둘 차례입니다.
퇴거 때 다시 도배할 면적 계산하는 법
붙인 면마다 가로와 세로를 재서 곱합니다. 예를 들어 가로 3.2m에 높이 2.3m인 벽 한 면이면 약 7.4제곱미터가 나옵니다. 붙인 면이 여럿이면 다 더하고, 이 합이 나중에 다시 도배해야 할 면적입니다.
도배 견적은 벽 한 면 단위가 아니라 방 단위나 평수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면적 옆에 어느 방의 어느 면인지 함께 적어 둡니다. ‘작은방 창 맞은편 벽 7.4제곱미터’처럼 한 줄이면 됩니다.
기록이 끝났는지는 세 숫자를 맞춰 보면 압니다. 붙인 면의 개수, 그 면을 찍은 사진의 장수, 면적 목록의 줄 수가 서로 같아야 해요. 하나가 모자라면 어느 면을 빠뜨렸는지 바로 드러납니다.
여기까지가 붙이기 전에 정리해 둘 수 있는 부분이고, 나머지는 계약서와 벽의 원래 상태가 정합니다. 특약 한 줄로 결론이 뒤집히기도 하고, 같은 손상이라도 임대 기간과 입주 당시 상태에 따라 달리 판단되기도 합니다.
퇴거할 때 합의가 되지 않으면 대한법률구조공단이 운영하는 주택·상가건물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나, 한국부동산원과 LH가 운영하는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붙이는 벽지를 이미 붙인 뒤라면 지금 남길 수 있는 기록이 있나요? A. 붙인 면의 가장자리와 아직 안 붙인 면을 한 장에 함께 찍어 두면 원래 벽 상태를 견줄 근거가 됩니다. 계약할 때 받은 사진이나 입주 전에 찍어 둔 사진이 있으면 같이 보관하세요.
Q. 시험 부착에서 기존 벽지가 뜯겼는데 그 부분은 어떻게 하나요? A. 한 뼘 크기라면 그 위를 붙이는 벽지로 덮어 가리지 말고 상태 그대로 사진을 남겨 두는 편이 낫습니다. 가려 두면 나중에 언제 생긴 손상인지 설명하기 어려워집니다.
Q. 임대인이 문자로 붙여도 된다고 했으면 원상복구까지 면제된 건가요? A. 부착을 허락한 것과 떼어낸 뒤 상태를 어떻게 할지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물어볼 때 떼어낸 뒤 벽지를 어떻게 하면 되는지까지 함께 물어 답을 글로 받아 두세요.
Q. 붙이는 벽지 위에 다시 붙이는 벽지를 겹쳐 붙여도 되나요? A. 겹쳐 붙이면 떼어낼 때 아래층까지 한 번에 딸려 나와 기존 벽지에 가는 힘이 커집니다. 겹쳐 붙일 생각이면 겹친 상태로 시험 부착을 다시 해봐야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Q. HB마크 등급은 제품 어디에서 보나요? A. 인증을 받은 제품은 포장이나 상세 설명에 마크와 등급을 함께 표시합니다. 표시가 보이지 않으면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이고, 한국공기청정협회에서 인증 제품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Q. 조정을 신청하려면 무엇을 준비하나요? A. 임대차계약서와 특약이 보이는 부분, 입주 시점과 퇴거 시점 사진, 상대방과 주고받은 문자 기록처럼 주장의 근거가 되는 자료를 모아 두면 됩니다. 위원회마다 접수 방법과 관할이 다르니 신청 전에 어느 위원회가 맡는지 먼저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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