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절 전날 밤에 부엌 불이 안 꺼진 적 있으시죠? 전을 다 부치고 나면 자정이 가깝고, 아침에는 탕을 올리느라 또 일찍 일어나야 해요.
그래서 나오는 말이 며칠 전부터 미리 해두자는 것입니다. 저도 이번에는 사흘 전에 손을 댔는데, 정작 당일에 줄어든 일은 별로 없었어요. 미리 무쳐 둔 나물에서는 물이 흥건하게 나왔고, 밑간해 둔 고기는 넣을 자리가 없어서 도로 꺼냈습니다.
미리 할지 말지는 날짜로 정하는 게 아니라 음식마다 따로 봐야 하는 문제였어요. 그런데 음식을 고르기 전에 먼저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미리 만든 음식이 들어갈 냉장고 자리입니다.
명절 음식 넣을 냉장고 자리 비우는 순서
미리 만든 음식은 전부 냉장고로 갑니다. 자리가 없으면 사흘 전에 세운 계획이 첫날에 멈춰요.
먼저 미리 만들 음식을 종이에 적고 가짓수를 세어 보세요. 나물은 종류마다 따로 담아야 하니 세 가지면 용기도 세 개입니다. 육수는 부피가 크니까 따로 셉니다.
그다음은 냉장실 선반 한 칸에 그 용기가 몇 개 들어가는지 재는 일이에요. 쓰려는 밀폐용기를 하나 꺼내 가로 길이를 재고, 선반 폭을 그 길이로 나눕니다. 선반 폭이 40센티미터이고 용기가 20센티미터면 한 줄에 두 개, 앞뒤로 두 줄이면 네 개가 들어갑니다.
용기 개수를 이 값으로 나누면 비워야 할 칸 수가 나옵니다. 나물 세 통에 조림 한 통, 밑간한 고기 한 통이면 다섯 개니까 두 칸입니다.

숫자가 나왔으면 비우는 차례입니다. 명절이 지나서 먹어도 되는 양념통과 소스류를 먼저 문 쪽 칸으로 옮기세요. 그다음 유통기한이 지난 것을 버리고, 얼려도 되는 것을 냉동실로 내립니다.
식약처는 냉장 보관을 5℃ 이하로 안내합니다. 칸을 통째로 비우지 못하면 미리 만들 음식 가짓수를 줄이는 쪽이 낫습니다. 자리를 억지로 만들면 용기를 겹쳐 쌓게 되고, 아래 칸에 깔린 음식은 꺼내 볼 일이 없어져요.
자리를 비웠으면 무엇을 먼저 넣을지 고를 차례예요. 그런데 나물처럼 미리 무쳐 둔 음식은 하룻밤만 지나도 용기 바닥에 물이 고입니다.
미리 무치면 물이 생기는 음식
나물에서 물이 나오는 건 데쳐서가 아니라 무쳐서예요. 소금과 간장이 닿으면 채소 안에 있던 수분이 양념 쪽으로 빠져나옵니다. 그래서 미리 무쳐 두면 다음 날 바닥에 물이 고이고 간도 싱거워집니다.
여기서 갈라야 할 것은 나물이 아니라 데치기와 무치기입니다. 데쳐서 물기를 꽉 짜 놓은 나물은 양념이 안 닿았으니 물이 안 생겨요. 사흘 전에 데쳐만 두고, 무치는 일은 당일로 미룹니다.
미리 무치면 물이 생기는 쪽은 나물무침과 겉절이, 오이나 무로 만드는 생채입니다. 잡채도 여기 가까워요. 미리 무치면 당면이 양념을 다 먹어서 다음 날에는 뻑뻑해집니다.
물이 안 생기는 쪽은 데치고 물기를 짠 나물, 간장이 이미 졸아 있는 조림, 갈비찜, 그리고 육수입니다. 이쪽은 양념에 든 수분과 재료 안 수분이 이미 균형을 이룬 상태라 하루 이틀 두어도 그대로예요.
우리 집에서 하는 나물이 어느 쪽인지 헷갈리면 한 접시 분량만 먼저 무쳐 보세요. 밀폐용기에 담아 하룻밤 냉장실에 두고, 다음 날 용기를 기울여 봅니다. 바닥에서 물이 흘러내리면 그 나물은 당일에 무치는 쪽입니다.

물이 안 생긴다고 전부 미리 해도 되는 것은 아니에요. 물이 안 생기는데도 다시 데우면 처음 맛이 안 나는 음식이 명절상에 세 가지 있습니다.
다시 데우면 맛이 떨어지는 음식 3가지
두 번째 기준입니다. 다시 데워서 처음과 비슷하면 미리 해도 되고, 아니면 당일로 옮깁니다.
식약처는 남은 음식을 다시 먹을 때 처음 조리할 때와 같은 74℃ 이상으로 데우라고 안내합니다. 안전은 데우면 해결되는데, 식감은 그렇지 않아요.
전
밀가루와 달걀옷이 냉장실에서 주변 수분을 먹습니다. 다음 날 데우면 겉이 눅눅하고 옷이 벗겨져요. 마른 팬에 기름 없이 약불로 데우면 어느 정도 살아나지만 갓 부친 것과는 다릅니다. 전은 하루 전이 한계입니다.
탕
국물에 담긴 무와 두부가 밤새 국물을 먹습니다. 다음 날 끓이면 무는 부서지고 두부에는 구멍이 생겨요. 육수만 미리 내고 건더기는 당일에 넣습니다.
떡국 떡
끓인 떡국을 두었다가 다시 끓이면 떡이 퍼져서 국물이 걸쭉해집니다. 떡은 당일에 넣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반대로 하루를 두면 나아지는 것도 있습니다. 갈비찜과 장조림은 식는 동안 양념이 속까지 배어들어서 다음 날이 더 맛있어요. 이런 음식은 사흘 전에 만들어도 됩니다.
그럼 미리 만든 음식은 전부 냉장고로 가야 할까요? 명절상에 오르는 것 중에는 냉장실에 넣으면 오히려 나빠지는 것이 있습니다.
상온에 둬도 되는 음식은 따로 있다
세 번째 기준입니다. 상온에 둘 수 있으면 냉장고 자리를 안 먹으니, 첫 절에서 센 용기 개수에서 빼도 됩니다.
식약처는 5℃에서 60℃ 사이를 식중독균이 빠르게 늘어나는 구간으로 봅니다. 조리한 음식을 상온에 두었으면 2시간 안에 먹거나 반드시 다시 데우라고 안내해요.
그래서 상온에 둬도 되는 쪽은 조리하지 않았거나 수분이 적은 것으로 좁혀집니다. 씻지 않은 과일과 밤, 대추, 곶감이 여기예요. 약과와 유과처럼 마른 한과, 그리고 술과 포도 상온에 둡니다.
떡은 반대입니다. 떡을 냉장실에 넣으면 다음 날 아침에 딱딱해져요. 냉장을 건너뛰고 바로 냉동으로 보내거나, 당일 아침에 사 오는 쪽이 낫습니다.
여기까지 셋을 봤습니다. 물이 생기는지, 다시 데워도 처음과 비슷한지, 상온에 둘 수 있는지. 이제 음식마다 날짜를 붙일 수 있습니다.
명절 요리를 사흘 전과 하루 전, 당일로 가르는 법
사흘 전에 해도 되는 것
식약처가 안내하는 냉장 보관 기간은 조리한 육류가 3~5일입니다. 갈비찜과 장조림, 탕에 쓸 육수가 여기 들어가요.
나물은 데쳐서 물기를 짜 두고, 고기는 밑간만 해서 재워 둡니다. 잡채에 넣을 채소도 이때 썰어서 따로 담아 놓으면 됩니다.
하루 전에 할 것
전 부치기가 여기입니다. 반죽과 옷 입히기를 이때 끝내고, 부친 전은 완전히 식힌 뒤에 통에 넣습니다. 잡채도 하루 전에 볶고, 생선은 소금 간을 해서 냉장실에 둡니다.

당일에 할 것
탕은 육수를 데워 건더기를 넣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떡국과 밥, 나물 무침, 전 데우기가 당일 몫이에요.
하루 전 일감은 통째로 줄일 수도 있습니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가 2022년에 낸 차례상 표준안을 보면, 기본 음식은 송편, 나물, 구이, 김치, 과일, 술 여섯 가지입니다. 여기에 육류와 생선, 떡을 더해도 최대 아홉 가지면 된다고 밝혔어요.
위원회는 기름에 지지거나 튀긴 음식을 차례상에 올릴 필요가 없다는 것도 함께 정리했습니다. 전을 빼면 하루 전에 남는 일은 잡채와 생선 손질뿐입니다.
날짜를 갈랐으면 담을 그릇을 정할 차례입니다.
날짜별로 담는 용기와 다시 데우는 순서
사흘 전에 만든 것은 밀폐용기에 한 가지씩 따로 담습니다. 데친 나물을 한 통에 몰아 담으면 물기가 섞여서 무칠 때 간이 안 맞아요.
육수는 지퍼백에 나눠 담고 눕혀서 얼립니다. 납작하게 얼고 나면 세워서 꽂을 수 있으니 자리를 덜 먹습니다. 식약처가 안내하는 냉동 보관 온도는 -18℃ 이하입니다.
하루 전에 부친 전은 겹쳐 담지 않습니다. 넓은 통에 한 겹씩 깔고 사이에 종이 포일을 끼우면 옷이 서로 붙지 않아요.
뚜껑은 완전히 식힌 다음에 덮습니다. 김이 남은 채로 덮으면 뚜껑 안쪽에 물이 맺혀 전 위로 떨어집니다.
당일 아침 순서는 얼린 것에서 거슬러 올라가 짭니다. 전날 밤에 냉동실 것을 냉장실로 내려놓고 자면 아침에 바로 쓸 수 있어요.
아침에는 육수를 제일 먼저 불에 올리세요. 육수가 끓는 동안 전을 마른 팬에 데우고, 그다음 탕에 건더기를 넣습니다. 나물은 이때 꺼내 무치고, 떡국과 밥이 마지막입니다.
다시 데우는 온도는 식약처 기준을 그대로 따르면 됩니다. 처음 조리할 때와 같은 74℃ 이상, 국물은 팔팔 끓을 때까지입니다.
여기까지가 혼자 준비할 때 짜는 계획이에요. 사람이 둘 이상이면 이 계획을 어떻게 쪼갤지가 하나 더 남습니다.
명절 일감을 음식으로 나눌까, 날짜로 나눌까?
음식으로 나누기
한 사람이 나물 전부를, 다른 사람이 전 전부를 맡는 방식입니다. 재료와 도구를 한 번만 꺼내면 되니 손이 덜 갑니다.
대신 전을 맡은 사람은 하루 전 저녁에 혼자 서너 시간을 씁니다. 일이 사람마다 고르지 않아요.
날짜로 나누기
사흘 전 담당, 하루 전 담당, 당일 담당으로 끊는 방식입니다. 한 사람에게 몰리는 날이 없습니다.

대신 앞사람이 어디까지 했는지 넘겨줘야 해요. 용기에 내용물과 만든 날짜를 적어 붙이지 않으면 다음 사람이 뚜껑을 다 열어 봅니다.
둘 중 어느 쪽이냐는 다 같이 한집에서 하느냐로 갈립니다.
각자 집에서 만들어 당일에 모으는 집은 음식으로 나눕니다. 옮기는 동안 상하지 않는 조림과 나물을 멀리 사는 사람에게 맡기고, 눅눅해지는 전은 당일 아침에 부칠 수 있는 사람이 가져갑니다.
한집에 모여서 하는 집은 날짜로 나눕니다. 냉장고가 하나라서 누가 무엇을 언제 넣었는지 적어 두기만 하면 계획이 그대로 돌아가요.
어느 쪽으로 나누든 미리 만든 음식에서 시큼한 냄새가 나거나 표면이 미끈거리면 다시 데워도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아깝더라도 버리는 쪽이 낫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뜨거운 음식을 식히지 않고 바로 냉장고에 넣어도 되나요? A. 뜨거운 채로 넣으면 냉장실 안 온도가 올라가서 옆에 있던 음식까지 영향을 받습니다. 넓은 그릇에 펼쳐 담아 김이 빠질 만큼만 식힌 뒤 넣고, 식약처가 안내하는 대로 상온에 두는 시간이 2시간을 넘기지 않게 합니다.
Q. 냉동실에 넣은 전은 얼마나 두고 먹을 수 있나요? A. 냉동 자체는 -18℃ 이하를 지키면 오래 가지만, 전은 시간이 갈수록 기름이 산화되어 냄새가 납니다. 명절 뒤에 남긴 전은 한 달 안에 먹는 것을 목표로 날짜를 적어 붙여 두세요.
Q. 나물을 데쳐서 얼려도 되나요? A. 데쳐서 물기를 짠 나물은 냉동해도 됩니다. 다만 녹일 때 조직이 물러지니 한 번 먹을 분량씩 나눠서 얼리고, 녹인 뒤에는 다시 얼리지 않습니다.
Q. 김치냉장고를 명절 음식 보관에 써도 되나요? A. 김치냉장고 보관실도 온도를 조절할 수 있으면 일반 냉장 대용으로 쓸 수 있습니다. 다만 김치 냄새가 배기 쉬우니 밀폐가 잘 되는 용기에 담고, 김치를 넣는 칸과 다른 칸을 쓰는 편이 낫습니다.
Q. 명절이 지나고 남은 음식은 며칠까지 먹어도 되나요? A. 식약처가 안내하는 냉장 보관 기간을 보면 조리한 육류가 3~5일입니다. 나물이나 전처럼 여러 번 꺼냈다 넣었다 한 음식은 그보다 짧게 잡고, 먹을 만큼만 덜어 데우면 남은 것을 여러 번 데우지 않아도 됩니다.
Q. 미리 만든 음식을 차례상에 올려도 예법에 어긋나지 않나요? A.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가 낸 표준안은 음식 가짓수를 줄이고 준비하는 부담을 덜자는 쪽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언제 만들었는지를 문제 삼는 내용은 표준안에 없으니, 집안 어른과 미리 이야기해서 정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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